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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violetcat8.wixsite.com/jkukim999

김종구의 개인전 <<사이렌 산수(Siren Sansu) Ⅱ>>가 열린문화공간 예술의 기쁨-김세중 기념 조각전시실에서 2017년 2월 15일(수)부터 3월 4일(토)까지 열린다.

오프닝 세레모니는 2월 15일 수요일 오후 5시에 있을 예정이다.

 

 

예술의 기쁨

김세중기념 조각전시실

140-897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로 70길 35

www.joyarts.org T:02-717-5129

관람시간:화-금 11am-5pm, 토: 1pm-5pm

 

이미지 1하늘우물/Sky Well

쇳가루/Iron Powder, Canvas, 나무틀/Wooden-F, 거울/P-Mirror, 2016

 

 

 

사이렌 산수 Siren Sansu

조각적 서화 조형론

김종구의 조각에서 ‘조각’을 지우면 어떻게 될까? 또 그의 캔버스 문장에서 ‘글씨’를 지운다면? 그의 조각과 글씨를 지운 흔적들 사이에서 아마도 우리는 무수한 그림자들만 읽게 될 것이다. 형(形)과 영(影)이 구분될 수는 없을 터이나, 형을 지우고 영이 남은 그 자리에 우리 근대 미학이 세우지 못한 동서융합의 서화 조형론을 세워보자. 김종구의 쇳 가루 미학이 떠오르지 않는가? 백년을 돌아서 미래의 과거를 세우는 오늘의 우물 자리는 김종구의 예술론이 터트린 황홀한 미리내의 별꽃과 유사하리라. 나는 그것을 감히 21세기의 동학이 서학과 마주하는 수평적 근대라 말하고 싶다. 동도서기(東道西器)와 서도동기(西道東器)가 한 판에서 어울리는 혜안의 심미안으로서.

수평적 근대의 표정에서는 캔버스와 한지, 붓과 먹을 구분할 수 없고, 공기원근과 색채학, 남종화/북종화, 서양화/한국화, 필법과 마티에르의 차이를 따지지 않는다. 형을 지우듯이 형식을 지우고, 새것을 찾듯이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다. 서학(西學)과 동학(東學)이 서로 도(道)를 찾고 서로 기(器)를 찾아 여기에 이르렀듯이, 이곳의 도와 기는 이제 서학도 동학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김종구의 예술론은 수평적 근대의 바로 그 균형에 있을 것이다. 김종구의 쇳가루 조형론은 19세기 근대의 서학적 미술론을 21세기 동학적 서화론(書畵論)으로 뒤집는 곳에 위치한다. 한 마디로 서학을 뒤집어서 동학을 끄집어 낸 형국이랄까? 1백년이 넘도록 서학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동학의 실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서학에서의 근대조각 개념이 동학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것은 매우 놀라운 사건이다.

조각이 ‘非-조각(ex-sculpture)’이 되는 사건! ‘非-조각’이 서(書)와 화(畵)의 서화(書畵)로 둔갑하는 사건! 이것은 마치 근대조각가 김복진의 발가벗은 첫 여체조각들이 1920년대의 조선에서 경악스러움의 정치 윤리적 사건으로 이해되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김종구의 非-조각적 서화 조형론을 새로운 사건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김종구의 쇳가루 조각(이것을 굳이 ‘조각’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은 다시 강조하건데, 서학에의 동학적 전복이다. ‘비-균형’을 균형으로 바꾸는 전복. 서구의 근대 조형론이 ‘몸(形)’이라는 창조적 형상론에 집착했다면, 그는 몸을 텅 비운 자리에 남은 탈각된 몸의 ‘흩어짐(影)’에 주목했다. 빈탕의 허(虛)다. 만들어서 제작하는 형상이라는 물적 토대의 3차원적 조각에서 물적 토대가 사라지고 흩어진 그림자로서의 ‘쇳가루’를 발견한 것이다. 형상은 없고 그림자로만 남은 쇳가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자, 바로 여기에 의미전복의 새로운 동학적 사유가 넘실댄다. (중략)

하늘 우물, 낮은 주름 김종구의 조형미학 톺아보기 김종길 | 미술평론가

 

이미지 2

사이렌 산수/Siren Sansu

쇳가루/Iron Powder, Canvas, 나무틀/Wooden-F, LED Light, Polycoat, 2016

 

김종구/Kim Jongku

www.kimjongku.com

jkukim102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