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근대적 기계를 통해 기계란 동일한 것들이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똑같은 그리고 완벽한 체계를 전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로봇 공학, 분자생물학 또는 나노공학의 하이테크놀로지 분야에서 기계는 종래의 근대적 기계와는 다른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포함한다. 특히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능력을 가진 기계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인공지능 로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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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표정, 몸짓, 행동 그리고 표정마저 똑같은 수많은 로봇 무리 속에 ‘써니’라는 단 하나의 로봇만이 다른 시선을 가지고 누군가를 응시한다. 위의 이미지는 2004년 개봉된 <아이로봇(I, Robot)>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2035년 로봇으로 가득한 세상을 묘사한다.

 

결국 영화의 전개는 로봇 써니의 정체를 밝히면서 죽은 박사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 유일한 로봇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영혼을 가진 써니는 법칙에 의해 존재하는 로봇과 달리 건물 밑으로 추락하는 인간을 구하라는 형사의 애절한 눈빛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로드니 부룩스는 ‘포섭적인 층구조이론’이라고 부르는 몇 가지 간단한 원칙만으로 로봇을 만들었다. 그것은 세 개의 기본적인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포섭구조(Subsimption Architecture)를 이루고 있다. 첫째 층은 로봇이 정지한 것이든 움직이는 것이든 모든 물체는 접촉을 확실히 피하도록 하는 통제 시스템이다. 둘째 층은 로봇에게 방랑벽을 부여하여 끊임없이 돌아다니게 하는 것이다. 셋째 층은 로봇이 무엇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목적을 가지고 세계를 탐색하게끔 하는 것이다.

출처: 로드니 부룩스, 『로드니 브룩스의 로봇 만들기』, 박우석 옮김, 바다출판사, 2005, pp. 79~80., 박영욱,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향연, 2008, pp. 136-137. 재인용

 

이렇게 만들어진 로봇 ‘징기스’는 센서를 통해 자신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경험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세상을 경험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더 특화된 유형의 구현이 일어나는 것이다.

출처: 로드니 부룩스, 『로드니 브룩스의 로봇 만들기』, 앞의 책, p. 90, 박영욱, 앞 책, p. 137. 재인용.

 

기계로서 징기스가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완전한 계산적 장치가 아니라는 것과 환경과의 무한한 반복적 경험 속에서 자신을 유형화한다는 것이다. 질 들뢰즈 역시 기계는 그 자체가 변형, 이탈 그리고 재배치 할 수 있는 유동적인 연접체계라고 주장한다. 들뢰즈의 기계 개념에서 중요한 것은 기계가 동일한 것의 반복이 아닌 차이를 생산하고 변형의 가능성을 그 속에 포함함으로써 스스로를 유형화하는 유동적인 체계라는 사실이다.

출처: 박영욱, 앞책, pp. 137-138.

 

이와 같은 맥락으로 칼 심스(Karl Sims)와 같은 작가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데 심스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인공생명을 다루는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연구자이다. 그의 작품 <판스페르미아(Panspermia)>(1990)는 어느 외계 행성에 떨어진 씨앗 하나가 수많은 상호교배와 돌연변이를 통해 다양한 식물 종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컴퓨터 영상으로 담았다. 끝없이 아주 먼 어느 곳에서 호두처럼 생긴 유성 하나가 황량한 지구로 날아든다. 그 유성은 지상에 도달하면서 끝내 폭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씨앗들이 산포된다. 이 씨앗들은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점점 자라나고, 꽃을 피우고, 다시 또 씨앗을 뿌린다. 지구는 온통 원시 식물로 가득해진다.

출처: http://www.karlsims.com/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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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archive.org/details/sims_panspermia_1990

 

판스페르미아라는 단어는 모든 우주를 통해 생명이 포자 또는 미생물 형태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판스페르미아는 가상생명체들이 성장하는 프로그램이자 디지털 가상세계에서 독특하게 자기 증식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사용된 진화 원리들과 유전 원리들은 유전자형(genotype)과 유전형의 발현 특성인 표현형(phenotype), 표현(expression), 선택(selection), 적합성(fitness), 재생산(reproduction), 그리고 교배(sexual combination)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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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재생산은 생명의 자기 증식 원리를 모델링한 것인데 유전자형이나 표현형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형이 발생되는 것을 말한다. 판스페르미아라는 이 가상의 생명체는 성장과 진화의 과정을 명료하게 보여주는데 자연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 수 없듯이 이 인공생명체의 진화 역시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컴퓨터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처: 김진엽·이재준, 「인공생명과 예술」, 『인문논총』, 제58집 (2007) p. 125.

 

인공생명 예술에서 창발성(emergence)란 단어는 ‘자기 조직화’라는 뜻을 가진다. 크리스토퍼 랭턴(Christophor Langton)은 인공생명에서의 핵심 개념을 창발적 행동(emergence behavior)이라고 주장하는데 자연적 생명은 수없이 많은 살아있지 않은 분자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출현하고 모든 부분을 통제하는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랭턴이 생각하는 인공생명은 모든 부분은 행동 그 자체이고 생명은 개별적 행동들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으로부터 출현하는 것이다.

인공생명 예술의 상호작용성은 무엇보다 기존의 디지털 예술이 보여주었던 상호작용성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기서의 상호작용은 기계적이며 닫힌 순환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문화적 에너지의 상호 교환이자 하나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다. 모더니즘 이후 예술에서 참여 형식을 통해 작품과 관객이 상호 소통했는데 디지털 예술이 보여주는 상호작용성에 대한 해석이 진부해 지는 이때 인공생명 예술은 다시 디지털 예술에 대해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인공 생명 예술은 타자, 즉 자신에게 환경으로 작용하는, 수많은 개체들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생존, 혹은 진화한다.

출처: 김진엽·이재준, 「인공생명과 예술」, 위의 논문, pp. 137-139.

editor 김 주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