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푸동 <Fifth Night>와 <라쇼몬>

 

일본인 감독 쿠로사와 아키라(黒澤明)의 유명한 영화 <라쇼몬(羅生門)>을 보면 하나의 사건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영화의 중심적인 소재는 어느 날 벌어진 살인 사건을 여러 증인이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 사건을 목격했다는 여러 증인들이 진술을 하지만 보는 입장에 따라 사건의 실상은 걷잡을 수 없는 채 막판에 이른다. 이 영화에서 감상자는 여러 증인의 목 소리를 듣고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진술을 따라 진실을 규명하려고 해도 하나의 정체는 결코 완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보는 입장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사건의 진실은 –마치 자끄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주장한 ‘차연’ 개념과 같이-미루어진다. 관람자는 살인 사건이라는 ‘기표’를 계속 침투해가는 여러 ‘기의’를 마주 하게 되는데 여기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완전한 일대일 대응이 아니다.

양푸동(Yang Fudong)의 <Fifth Night>(2010)은 2013년 리움에서 《미장센-연출된 장면들》 전시가 열렸을 때 어두운 전시공간 내부에 넓게 전시되었다. 이 작품은 일곱 개 채널로 구성된 영상작업인데 각각 다른 각도에서 하나의 장면을 찍은 것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한 화면에 나온 등장인물이 다른 화면에 다른 각도에서 찍힌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대처럼 도시 한 가운데에 보이는 공간은 자연스러운 도시의 한 장면이라기보다는 (전시회 부제처럼) 세팅되어 연출된 장면으로 보인다. 그러한 장면을 둘러싸서 전개되는 영상은 특별한 줄거리가 명시되지 않은 채 흑백으로 처리되어 신비롭고도 불안한 느낌을 주는 인상을 관람객에게 준다. 작품은 대사 없이 진행되면서 관람객은 그 장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하면서 보게 됨으로써 <라쇼몬>에 나오는 증인 역할을 맡게 된다. 주로 롱 테이크 샷으로 촬영되어 여러 화면에 묘사된 장면은 관람객을 몰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어느 장면을 보아야 서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시각적으로 일곱 개 화면으로 파편화된 장면은 일차적으로 기표가 여러 양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관람객이 어느 장면을 수용할지에 따라서 장면이 더 세밀해진 파편화를 거친다. 세분화된 장면을 수용하는 관람객은 그 장면이라는 진실로 다가가려고 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라쇼몬>에서 관람객은 목격자의 여러 증언을 살펴보고 진실을 규명하려고 한다면, 양푸동의 <Fifth Night>에서 관람객은 사건을 보는 증인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CCTV처럼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보여지는 하나의 장면은 관람객이 그 장면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서 ‘연출된다.’

<사진출처> LEAP [http://www.leapleapleap.com/2012/04/yang-fudong-one-half-of-august/]

<참고자료>
마단 사럽, 전영백 역,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서울하우스, 2005

제이 에멀링, 김희영 역, 『20세기 현대예술이론』, 미진사, 2015
http://www.leapleapleap.com/2012/04/yang-fudong-one-half-of-august/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