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백남준 전 : 2020년 웃고 있는 사람은 누구 ?+?=??》

도쿄 와타리움 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의 전시는 그가 세계에 걸쳐 남긴 업적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10주기 추모기념으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서 기획된 이번 전시는 시대적으로 백남준의 작업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이번에 필자가 찾은 전시는 후반기에 해당되는 전시이며 주로 1990년대 이후에 활동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와타리움 미술관의 2층부터 4층까지, 그리고 지하에 있는 뮤지엄 샵까지 백남준의 작업이 전시되었다. 가장 먼저, 2층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백남준”이라 할 때 떠오르는 비디오 혹은 영상작업이 아니었다. 식물과 캔버스를 사용한 <달을 향해 소리 지르기>(1992)라는 작업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작품으로 나타낸 것과 같다. 전시공간인 ‘Room 4’는 1993년에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로서 작업하고 나서, 여기 와타리움 미술관에서 《백남준 지구론》라는 이름 아래 전시한 작업을 다시 보여준다. 드로잉을 비롯하여 시계의 추를 실시간으로 찍힌 것을 보여주는 작업 <French Clock>(1993)이나 TV로 된 로봇 <K-567>(1993), ‘파운드 오브제’가 아니라 ‘파운드 사운드’에 주목하여 만든 <Cage in Cage in Cage>(1993)을 감상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삼각형에 대한 백남준의 생각이 드러나는 작품인 <시간은 삼각형>(1993)이 시선에 잡혔다. 삼각형은 백남준이 좋아한 도형인데, 이는 불교사상의 ‘과거-현재-미래’의 생각과 연결해서 볼 수 있다. ‘현재’라는 시점은 과거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데, 그의 작업 또한 전통적인 미술과 첨단적인 기술을 현시점에서 연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젠 사상에서 영향을 받거나 주변을 밝혀주는 원시적인 존재인 불과 근대 이후의 빛인 TV를 결합시킨 작업, 또는 로봇 이름에 붙여진 ‘K’가 모차르트의 작품 번호를 가리킨다는 내용은, 그가 과거와 미래의 양쪽을 보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Room 5’인 3층에서는 하나의 큰 작업 <유라시아의 길>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작업은 하나의 여정을 작품으로 끌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동안 수집한 일상용품과 그 여정을 찍은 영상, 그리고 한국에서 진행된 추모 굿 퍼포먼스와 예술가 울리케 오팅거(Ulrike Ottinger)의 영상작업을 소재로 골라 제작되었다. (참고로 전시기간 동안 이 주제에 맞춰서 뮤지엄 샵 중앙아시아의 공예품이 구매 가능하다.) 93년에 제작된 이 작업은 유럽과 아시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80년에 <경제가치>라는 이름으로 동독의 일상용품을 서독에 전시한 작업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유라시아의 길>에서 드러난 보이스와 백남준의 연관성은 4층 ‘Room 6’에서 보다 확실해진 다. 이 공간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교류이다. 보이스가 <7000그루 참나무>에서 쓴 금액을 충당하기 위해 백남준이 당시 성장기였던 일본의 기업을 소개해서 강연의 자리를 제공한 일화로 시작되어 1984년에 보이스와 함께 한 무대공연(<코요테III>) 그리고 보이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작업인 <보이스>(1988)와 퍼포먼스를 기록한 <보이스를 보내며>(1986)까지 전시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추모의 작업으로 진행된 <보이스를 보내며>에서 보이스 이름에 한자를 갖다 댄 것에 대한 해석이다. 한국에서 무당 퍼포먼스로 진행된 작업에서는 보리수(普吏壽)로 표기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일본식 한자 읽는 법에 맞춰서 보이스(帽吏壽)로 표기되었다. 여기서 ‘보’는 모자를 뜻하며 보이스의 상징적이라 볼 수 있는 모자를 떠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 아시아 민속신앙에 모자는 영혼을 담는 것이라 전해져 오며 이 작업에서 보이스의 죽음이 모자로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는 동이족을 가리키는데 유라시아 대륙이 아시아, 특히 한국과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에서 백남준의 정체성과 일치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활동한 백남준의 작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90년대에 그가 가지고 있던 ‘둘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은 사고까지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좋아했던 삼각형은 이곳 와타리움 미술관의 토지의 구조인 동시에 그의 작업에도—형식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나타난다. 90년대 백남준은 과거와 미래의 양자를 바라볼 수 있는 현재라는 시점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와 전통, 서구와 아시아 그 어느 한쪽만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양쪽을 볼 수 있는 삼각형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