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

김주옥

 

* 이 글은 ‘SNS로 보는 미술현장의 비전-확장 or 변화’의 주제를 다룬 2016년 『미술과 담론』, 44호에 기고되었던 글이다.

출처: www.artnd.net

 

매개와 소통 그리고 SNS(눈) 

 초면에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나에게 주로 물어보는 것이 미술계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 큐레이터라고도 대답하고 나서 그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 내가 고작 일 년에 한 번 정도 시각미술 전시 관련 프로젝트를 하는 것, 그리고 한 번의 전시에 전시가 아닌 너무 많은 행사가 딸려 있기 때문에 굳이 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는 것을 느낀다. 사실 생계는 대학 강의나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이어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의 직업은 뭘까 라는 잠깐 고민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 다음 명함을 제작할 때엔 논란이 되는 ‘독립 큐레이터’ 대신 ‘문화예술 매개자’라고 써놨었다. 물론 그 단어가 더 많은 의문과 질문을 유발하기는 했지만 내가 스스로 나의 직업이나 미술계에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아마도 나는 ‘미술로써’, ‘미술을 통해’ 무언가를 매개하는 또는 소통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소통에 대한 의미의 비평적 접근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소통을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는 매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카톡이나 페이스북일 것이다. 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람으로 아마 Y세대라고도 불리는 디지털 세대의 맏이정도가 될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에는 한 반에 몇 명만이 PC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주로 천리안, 나우누리 등을 통해 채팅을 하며 컴퓨터를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진입하려고 했을 때 나는 대학 입시용 지원서에 전화번호, 주소 외에 ‘이메일 주소’를 적으라는 칸을 처음 보았다. 이것은, 물론 그 전에도 메일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겠지만 이제 진짜 나 역시 PC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던 사건이었다. 아마 그것이 지금 1950년대 생인 내 부모님 세대가 얼마 전 스마트 폰을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받아들였던 기분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세 번째 밀레니엄’ 세대에 걸맞는 인간이 되기로 스스로를 허락한 후의 이 세상은 IT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었었고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인 21세기의 첫 십년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스마트폰을 한 손에 쥐고 페이스북으로 세계의 실시간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듣는다.

 SNS를 한글문서에 적고 있자니 자꾸 한글로 자동 변환이 되어 ‘눈’이라는 글자로 바뀐다. 그리고 그 SNS를 대표하는 페이스북은 ‘얼굴’-book이다. 눈과 얼굴… 새삼 그 단어의 조합이 재미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했던 Royal 예술가들

 2014년도에는 내가 공동기획에 참여했던 ‘루와얄 섬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10명의 한국작가들과 나를 포함한 2명의 기획자가 비물질적인 레지던시를 만들고 그 레지던시 보고전 형식으로 2차례 전시를 개최하는 1년 프로젝트였다. 여기서 비물질적이라 함은 솔직히 말하자면 자본의 부족함에서 비롯되었다.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그 모든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인 건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들과 만났을 때의 주로 하는 대화 주제는 ‘요즘 어디서 작업하는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어떤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지’였는데 어디서 작업하는지는 대부분 작업실 위치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레지던시 공간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작가들이 레지던시에 들어가 있었고 대개 1년 정도인 입주기간이 끝나면 다른 레지던시에 들어가기 위해 다른 여러 곳에 지원을 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예술 정책적으로는 ‘문화 교류’의 측면에서 사용되고 문화적, 국가적 경계선을 넘어서 타 문화와 교류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고 그 레지던시가 행해지는 장소의 지역 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특징도 갖고 있다. 그리고 예술가에게는 창작 공간을 제공 받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고 평론가나 큐레이터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전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들 사이에서는 중요한 통과의례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한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 작가들이 귀찮게 생각하는 것들 또한 존재한다. 지역 연계 활동이나 시민참여 활동같이 의무로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고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피드백을 얻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역량있는 비평가나 큐레이터에게 자신의 작업을 보여주는 기회를 갖기를 바라고 그로 인해 더 좋은 전시기회를 잡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듣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도 교류-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기 싫은 것들은 뺀,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만 존재하는 레지던시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속박되지 않은 채 작가들이 원하는 프로그램만으로 구성된 참여 작가들에게 ‘이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물론 권리를 누리기 위한 만큼의 의무는 없었기 때문에 자유로웠지만 그만큼 풍족하지 않았다. 발품을 팔고 최대한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 프랑스 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문화원 세미나실을 사용하거나 프랑스 비평가를 초대하는 비행기 값과 숙박비 등의 자금을 해결하기도 했고 여러 인맥을 동원하여 프랑스 큐레이터, 작가들을 섭외했다. 그리고 이 레지던시의  ‘장소’는 ‘Royal Island’라는 뜻의 불어인 ‘Ile Royale(루와얄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1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기획자 2명과 작가 10명은 모두 프랑스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유학을 결심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향수이건 아니면 결국은 실망이었던 간에 어떠한 ‘프랑스 적인’ 기대감에 미술의 나라로 대표되는 프랑스로 떠났었다. 그리고 모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새롭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고 한국에서 다시 기반을 잡는 데에 어려움도 겪었다. 그리고 문득 우리는 과연 그때의 프랑스에서의 삶이 나의 예술적 작업을 하는 현재의 상태에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실제 프랑스에 존재하지는 않는 섬이지만 왕족을 연상시키거나 성대한 느낌을 가진, 마치 사유지 섬에 호화로운 휴가를 떠나는 듯 다시 내가 원하던 프랑스로 돌아가고자 루와얄 섬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나와 공동 기획자는 매 순간 작가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ileroyale/)에 업로드 하게 된다. 2

 페이스북에 작가들의 활동을 업로드 하면 재미있는 댓글이 달린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지금 프랑스냐”, “언제 파리 왔냐” 등 사람들은 진짜로 우리가 프랑스에서 이러한 활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일일이 ‘상상의 공간’에서 비장소성, 비물질성을 가진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설명해야하나 싶기도 했지만 잠깐 더 지켜보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그리고 물질적인 제약으로 시작한 이러한 활동들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페이스북은 처음의 의도대로 단순히 우리의 활동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자료를 아카이빙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페이스북 자체가 하나의 사이버 전시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3

 그리고 새로운 의미가 창출됐다. 우리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저곳 프랑스에 연관된 한국의 장소를 떠돌아다니며 그것을 ‘루와얄 섬’이라고 명명했는데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실제 이 섬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의 여부는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기획자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결국 이 프로젝트는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내가 생각한 나의 역할은 아마 기획자가 아닌 매개자였던 것 같다. 가상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자이자, 한국에 있는 작가들을 프랑스에 데려다 놓는 한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사람인 동시에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예상했던 것에 비해 이 루와얄 섬 레지던시 프로젝트는 확장되어 일련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활동 외에도 금천예술공장과 문화공장오산에서 전시를 했고, 그 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도 차기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제2회 루와얄 섬 레지던시 프로젝트 연구모임’이라는 주제로 여러 지원을 받았다. 그리고 이때에는 페이스북에 다른 페이지를 만들어서 활동했는데 https://www.facebook.com/ileroyale2/에서 모든 활동을 노출했고 그 안에서 댓글을 통해 의견을 교환했다.4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오해 없이 뜻이 잘 통하게 하려는 것을 ‘소통’의 의미라고 생각한다면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고 대화하는 과정은 참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각기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한데모여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데에는 너무 많은 제약이 뒤따른다. 실제로 루와얄 섬 프로젝트가 결국 SNS의 한 형태인 페이스북에서 많은 의견 교환과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면 바로 이러한 시간-공간상의 제약이 줄어든 이유에서이다. 실제 금천예술공장과 문화공장오산에서도 많은 분들이 전시를 보고 가셨지만 우리가 페이스북 활동을 통해 사람들에게 루와얄 섬 프로젝트를 알린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우리에게 휴대폰을 쓰면서 전화번호를 저장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더 이상 가족이나 친한 친구의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않는 점을 본다면, 그리고 스마트 폰이 생긴 후에는 집에서 나서기 전에 도착지의 약도를 그려가지 않는 것처럼, 어쩌면 페이스북이라는 것은 나에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노트처럼 하나의 정보를 저장하는 방인 동시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내가 원할 때 접속하여 시간의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마치 날짜가 지나 놓친 전시를 계속해서 볼 수 있는 사이버 갤러리와 같았다.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랩(Inter-lab)

 현재 내가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인터랩(interlab)은 융합예술전문 웹진이다. http://interlab.kr/  웹에서 에디터로 활동을 하면서 처음부터 고려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루와얄 섬 프로젝트 때부터 갖게 된 전시를 웹이라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로 전시가 이렇게 웹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던가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전시를 많이 보러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e-book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보고 전시의 영상도록이 만들어지더라도 사람들은 책으로 된 도록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단지 어떤 사람들은 전시를 실제로 보러가는 수고로움의 기회비용을 생각하여 미리 검색을 해서 전시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내가 움직일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파악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놓친 전시가 어떤 것이었는지 웹을 통해 검색하여 보기도 한다.

 사실 전시를 보러간다는 것은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전시장의 문이 열려있는 시간에 내 스케줄을 맞춰 가야 한다는 제약이 크다. 그리고 그 수많은 전시를 모두 보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변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획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애써 오랜 기간 준비한 짧은 전시를 마감 할 때의 아쉬움과 작가입장에서도 아직 많은 사람에게 충분히 작품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일 테다.

 실제 인터랩에서는 ‘ISSUE’라는 좋은 전시를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웹 상의 인터랩 홈페이지에서 전시를 소개했을 때보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훨씬 많은 수의 사람이 그 기사를 보았다. https://www.facebook.com/interlabart/ 페이스북 페이지는 몇 명이 그 아티클을 봤는지 표시가 되기 때문에 홍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 정보가 노출된다. 또한 페이스북 내에서는 나의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단체 메세지를 통해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요청을 보낼 수 있다. ‘좋아요’를 눌러주면 이제부터 메인 페이지인 뉴스피드에 업데이트 된 내용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페이지에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은 이제부터 그 페이지의 새 소식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5

 사실 이 인터랩이라는 이름에서도 보이지만 이곳의 에디터로 활동을 하면서 이제 더 이상 내가 쓰는 글이나 기사가 한 번 업로드 되는 것이 무언가를 완성시킨다는 역할에서 벗어나 내가 무언가의 ‘사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작가 인터뷰 같은 경우 만약 지면 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려 나오게 된다면 한번 찍힌 잡지를 다시 찍지 않는 한 완성이 되지만 이제 이런 글들이 SNS에 올라가게 되면 그 반응들이 빠른 것은 물론이고 수정요구는 물론 사진 추가 등 작가들의 요청도 생기게 된다. 나는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계속해서 ‘소통’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노력 없는 소통이 불가능한 것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들의 전달이 아니라 인터랩을 통해 그 기사의 주인공들과 그리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것이다. 사실 소통은 굉장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마침표가 없는 살아있는 기사가 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생성되고 있는 어떠한 생물을 사람들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천 개의 눈물과 일상이 사이버 스페이스에 모일 때

 

 송창애 작가는 작년에 이어 올 해 두 번째로 <천 개의 눈물, 천 개의 일상>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난 평소 친분으로 송작가와 함께 진행상 의견을 나누었던 일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대략적 내용을 소개하자면, 4월 16일 당일,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있는 ‘천 개의 눈물, 천 개의 일상’ 페이지에 올리면, 그것과 송작가가 청분을 입힌 30x30cm의 종이에 물 드로잉을 한 <천 개의 눈물> 작품과 합성한 것이 <천 개의 일상>이라는 작품으로 재탄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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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작가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타인들의 트라우마와 연결하여 사유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사회의 네트워크 속에서 연결되어 성장하고 진화하여 살아가는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자신만의 관점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고 그 삶 속에서 다시 ‘관계’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하는 목표”가 담겨있다고 전한다. 9

 난 송작가의 프로젝트를 볼 때면 사실 타인과 함께 소통하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힐링’을 선물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쩌면 나를 없애고 다시 나를 만드는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 자체도 함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인정하고 힘을 들여 대화하는 이유는 아마도 타인이 없이는 나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소통의 가장 큰 문제점은 힘들이지 않고 나를 버리지 않으며 사람들과 함께 사이좋게 공존하려는 안일한 태도인 것 같다. 사실 ‘소통’이라고 하는 단어는 이제 너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을 불러오지 않는다. 특히 미술계에서 소통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던 사례를 보면 나에게는 대체로 ‘소통’이라는 언어적 의미를 피상적으로 접근한 나머지 질적으로 하양평준화 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현대미술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게 하기 위해 그냥 ‘쉬운 미술’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공공미술 또는 공동체 미술이라는 미명하에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선물인 듯 제공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나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불쌍하게 소외된 자리에 놓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소통하려 하고 있고 오늘날의 그 방법은 SNS를 통해서 이다. 나에게는 페이스북이 나의 눈으로 세상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매개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매개를 통해 예술을 매개하는 매개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