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랩에서는 ‘물(水)’로써 세상을 바라보고, ‘물(水)’로 ‘물(物)’을 그리는 송창애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 어느때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송창애 작가는 생명의 근원과 본질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 본성을 기반으로 한 소통의 문제를 물이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 미학적으로 접근한다. 송창애 작가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워터스케이프 Waterscape> 연작과 소셜 공동 프로젝트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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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랩 : 안녕하세요 작가님, 일단 올해는 ‘2016 코리안 아티스트 프로젝트 (Korean Artist Project)’에 선정되시고, 연 단위 프로젝트인 [천개의 일상] 그 두번 째 이야기와 올 10월에 마친 제 20회 개인전까지 많은 활동을 보여주셨는데요, 거기다 작업실 이전까지, 최근 파주출판단지에 새 둥지를 트시며 매우 분주한 한 해를 보내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얼마 전 백운갤러리 개인전에서 발표하신 ‘물꽃’이라는 소재는 작가님만의 고유한 표현기법인 ‘물 드로잉’과 만나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낸 것 같은데요, 이 전시의 주요 컨셉과 제작과정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송창애 : 네. 지난 전시의 타이틀은 <<WATERSCAPE_水流花開(수류화개)>>였는데요, 워터스케이프는 ‘물 풍경’을 의미하고, 수류화개는 ‘물 흐르고 꽃이 핀다’라는 뜻으로 중국 북송대 소동파의 ‘십팔대아라한송’중 아홉 번째 아라한에 나오는 문구, 그러니까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물 흐르고 꽃이 핀다’는 본디 우주의 섭리를 의미하는데, 저는 어떤 대상을 욕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고 저절로 움직이는 생명의 근원과 그 힘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문답을 흐르는 물과의 혼연일체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요 소재였던 물꽃은 물로 그린 꽃이라는 일차적 의미와 물과 나 자신과의 일체의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피어오르는 어떤 산물, 즉 물에서 출발하여 어딘가에 도달하기까지 그 중간과정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표상 중 하나라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물꽃은 불완전한 존재의 완전성에 대한 그리움과 본성회귀에 대한 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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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드로잉’이란 흐르는 물을 분사하여 수압에 의하여 바탕에 칠해진 색을 지우고 씻어내는 방식의 조형어법입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이런 기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저밖에 없지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재료기법에 대한 오랜 탐구와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우연과 역발상이라는 전혀 예측치 못한 단계를 거쳐 개발된 것이니까요. 최종적으로 ‘물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지우개 – 바람 – 물 > 세 단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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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과정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3R7b4bucNIM

원래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저는 초기에는 지필묵(紙筆墨)으로 작업을 하였는데, 어느날 문득 동양화는 왜 항상 흰 바탕(韓紙)에서 출발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동양화의 최고 이상으로 삼았던 기운생동(氣韻生動)이란 분명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음/허/무/공(陰/虛/無/空)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검은 먹(墨)으로 실상(實相)을 표현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하여 반대로 한 번 시도해보았습니다. 화면바탕 전체를 흑연으로 검게 도포한 후 지우개를 이용하여 그리고자 하는 형상을 지워서 본래의 흰 바탕을 드러내 보았습니다. 지움과 동시에 그려지는 허와 실의 상생. 이 방식이 제게는 개념적으로 나마 좀 더 ‘허 중시적’ 동양사상의 조형적 표현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작업의 스케일이 커지면서, 노동집약적인 지우기 방식으로 손목에 이상이 왔고 급기야 그림을 그리는 것이 고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모색하던 중 우연히 ‘바람 드로잉’을 발견하게 되어 지우개 대신 에어 콤퓨레셔에서 나오는 공기바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기존의 지우개기법보다 훨씬 자유롭고, 개념적으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습한 여름이 되자 에어 콤프레셔의 공기통에 물이 차서 에어건에서 물이 세어나와 작품에 지져분한 물자국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이 세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느날 갑자기 ‘차라리 물로 물을 그리면 어떨까?’라는 역발상이 떠 올랐습니다. 그래서 바로 에어건에 물호스를 연결하고 마치 물총놀이를 하듯 신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처음으로 유레카를 외치던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물 드로잉’ 기법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제 작업에서 물은 소재, 표현기법, 의미 모두를 담는 하나의 그릇입니다. 즉, 물은 형식이자 내용입니다. 저는 흐르는 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제 기질과 가장 적합한 매체와 만났고 창작과 표현에 대한 자유감을 되 찾을수 있었습니다. 저는 물과의 혼연일체를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항대립적인 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비롯된 시각적 부산물들을 화면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제가 무엇을 표현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는데, 그럼으로써 물자체의 순수한 속성들(생명성, 가변성, 유기성, 정화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터랩 : 역발상과 우연, 그리고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는 어쩌면 모든 창조의 필연적 요소들이 아닐가 싶습니다. 작가님께서 설명하신 ‘물 드로잉’ 기법은 에어 콤프레셔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수압에 의해 작업을 하게 되므로, 한번 그리면 다시 지우거나 수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할 것 같은데요.

 

송창애 : 네, 물론입니다. 일단 한 번 그은 선은 수정 불가능합니다. 동양화에서는 이를 ‘가필(加筆)’이라고 합니다. 가필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든 흔적들이 고스란히 화면에 남게 됩니다. 이 부분은 마치 우리내 인생과 마찬가지 원리인데요, 한 번 지난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모든 과오는 인생의 일부로 그 흔적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업 전, 마음을 최대한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로 유지하고, 종일 침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물로 그림을 그리기 전 단계, 초벌 작업으로 청분(靑粉)을 바탕화면 전체에 도포하는데, 이 과정을 언어적으로 표현하자면 침묵과도 같습니다. 푸른 색 물감을 바탕에 도포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점점 더 깊은 수면으로 빨려들어가 아주 내밀한 자아과 마주치게 되는데,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리고 일단, 물을 쏘기 시작하면, 한 작업을 모두 마칠 때까지 가능한 중간에 멈추지 않습니다. 그저 흐르는 물에 몸을 의지한 채, 물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춤을 추듯 움직입니다. 한참 몰입해서 작업을 하고 나면 잠시 그린 것을 바라보다가 잠에 빠지곤 합니다.

 

인터랩 : 앞서 작가님께서 원래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언급하셨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작가님의 사고가 매우 융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즉, 전통 동양사상을 토대로 현대적 조형어법의 융합적 표현이라고 할까요. 혹,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융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송창애 : 글쎄요…일단 제가 생각하는 융합은 기계론적인 매체 간의 일차원적인 것을 넘어 소프트웨어의 융합, 즉 서로 다른 컨텐츠 간의 융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술이 아닌 철학의 문제이지요. 저는 자기철학이 없는 예술은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철학을 갖추기 위해서는 동서고금의 철학을 먼저 섭렵하고 동시대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토대로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작품의 미적 가치란 단순한  외형적 조형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내적인 미의 가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술뿐 아니라 철학, 종교, 과학, 사회등 타 분야에 대한 관심과 융합적 사고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랩 : 그런 면에서 작가님께서는 쇼셜네트워크(SNS)활동도 나름 적극 참여하시고, 특히 SNS를 이용한 소셜 공동창작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2014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 공동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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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 공동 창작 프로젝트 동영상 결과물

https://www.youtube.com/watch?v=aHJTXoxqo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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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은 총 4년(2014~2017)에 걸친 공동 프로젝트입니다. 개인적 차원의 <워터스케이프> 시리즈와는 구별되지만 동시에 물을 공통분모로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단,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 프로젝트의 모티브는 ‘세월호’ 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인한 개인적인 심리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작하게 된 <천개의 눈물>의 물방울 작업(각 30x30cm)이 한 개에서 천 개에 이르기까지, 예술을 통한 수없는 반복적 수행과정으로 문제의 본질을 통찰하고 내면적 질서를 되 찾고자 하는 과정중심주의적 프로젝트였습니다. 세월호가 지니는 정치적, 사회적 관점이 아닌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의 본질과 가치를 고민하고, 이를 최소의 조형요소인 점(물방울)과 푸른 색만을 이용하여 작업하였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감당하기에는 문제의 본질이 너무나 복잡하고 방대하여 중간에 수도없이 포기하고 싶었는데,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1000점의 물방울을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 이게 나의 숨방울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황망함.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매우 단순한 진리, 생명의 본질과 가치. 감히 그것들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으나,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그 흔적을 남기고 싶은 욕망,  모든 인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단일 조형언어인 물방울로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천개의 일상>은 이듬 해, 그러니까 2015년 4월 16일 단 하루동안 SNS를 통해 당일 찍은 자신의 일상 사진을 모으는 공동 프로젝트였습니다. <천개의 눈물>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이 아이디어가 떠 올랐고, 이 사건은 단순히 끝날 문제가 아님을 직감하였습니다. 실제로 세월호 사건은 2016년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우리내 삶에 지속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015년 첫 번째 공모를 통해 모아진 총 405명의 일상 사진을 제가 그린 <천개의 눈물> 물방울 시리즈와 1:1 매치 후 디지털로 합성을 하는 방식으로 2016년 두 번째 공모에는 총 294명이 참여하여 현재까지 총 700여 개의 <천개의 일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2017년 세 번째 공모를 통해 <천개의 일상> 프로젝트를 일단락 지을 예정입니다. 

 

 

인터랩 : 결국 <천개의 눈물 & 천개의 일상>은 소통이 중요한 화두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소통’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송창애 : 네, 맞습니다.  <천개의 눈물>은 저 개인의 내면적 소통을 통한 생명의 근원과 본질,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였다면, <천개의 일상>은 사회적 소통을 통한 유기적 관계성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원래 사람들과의 깊은 내면의 소통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이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 저를 봅니다.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다름 아닌 ‘타자화된 나’ 이니까요. 그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그들이 있음을 깨달음으로써 물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의 공통된 본성은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랩 : 그렇다면 보통 작가님은 소통의 결과에 대한 산정을 하시고 작업하시는지요?

 

송창애 : 글쎄요, 소통에 대한 결과를 미리 산정해서 작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같은 것은 품고 작업을 하지만 결국 소통의 결과는 창작자에게 있기보다는 감상자에게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을 농사에 비유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수확물을 거둘 때까지 그 모든 과정에 온 정성을 쏟지만, 그 수확물이 열매가 될지 땅에 떨어져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측불가능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가가 소통의 결과를 미리 산정하고 작업을 한다면 그 자체가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헤치는 것입니다. 현대미술은 결과물 자체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이 도드라져 과정을 작업의 일부로 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진정성이란 결국, 예술, 삶, 작가가 모두 하나로 일치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작가 자신과의 내밀한 소통과 경험의 산물이기 때문에 자신과의 소통의 깊이가 결국 타자와 세계와의 소통도 좌우한다고 믿습니다.

 

 

인터랩 : 작가님께서는 처음 어떻게 ‘물’이라는 소재와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되셨는지 궁급합니다.

 

송창애 : 일단 저는 저의 예술관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이수관지’라는 사자성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물로써 세상을 보다’라는 뜻으로 제가 세상을 인식하는 관점을 보여줍니다. 본디 이 말은 사실 노자가 제시한 세상을 바라보는 두가지 관점, ‘이물관지(以物觀之)’와 ‘이도관지(以道觀之)’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물질로써 세상을 볼 것인가 아니면 도로써 세상을 볼 것인가, 이 두 상반된 두 관점을 저는 물을 통해 통합하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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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물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삶에 대한 허망함과 예술의 근원적 기능에 대한 절망감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저는 10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2010년에 귀국 하였는데, 당시 정체성과 작업에 대해 또 한 번의 혼란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내 속이 텅 빈 것 같고, 작품발표 때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세상과 예술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들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신적 마비 상태가 왔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숙명이란 이런 것인지, 예기치 않게 지방에 있는 작은 레지던시에 초대를 받아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전혀 생기지 않아서 매일 흰 화판만 바라보며 혼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무런 의지도 욕망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 그러던 어느날, ‘만약에 아무런 의지 없이도 내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이 있다면’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만일 이런 것이 있다면 그때는 작업을 다시 하고 아니면 이 기회에 손을 놓자’라는 다소 극단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얼마 후, 가슴 속에서 뭔가 꼬물꼬물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이 근질근질하였습니다. 순간 저도 알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끝나고 보니 물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물줄기 하나가 스물스물 흘러 나오더니 갑자기 큰 강을 이루고 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뭔지 모를 해방감과 함께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힘을 느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삶과 예술창작에 대한 스스로의 명분을 되 찾으며 그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을 통해 제 존재와 작품세계의 전후가 확 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그림을 이끌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이후로는 그림이 나와 나의 삶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인터랩 :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앞으로의 작업세계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구나!’ 요즘 부쩍 자주 드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마흔정도 되면 세상의 이치를 훤히 깨닫고 뭔가 성취할 수 있을거라 착각 했었는데, 제게는 이 시기가 오히려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마흔 중반에 들어서면서, 조금 평온해짐을 느끼고 좀 더 총체적인 관점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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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을 통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생명의 근원과 본질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현대문명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보편적 가치란 무엇일까에 대해 시각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예술의 근원적인 기능에 다시금 질문해 보고자 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우리는 모두 큰 우주의 일부입니다. 저는 물과의 혼연일체를 통해 그림을 그릴 때 제 안에 작은 그러나 온전한 우주가 존재함을 느낍니다. <천개의 눈물> 프로젝트를 하면서 비록 한 개의 물방울은 미비하나, 천 개의 물방울은 바다를 그리고 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매우 단순하나 의미있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저의 모든 작업의 바탕에는 전통 동아시아의 생태학적 자연관이 깔려 있습니다. 현대문명사회는 서구의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와 물질숭배로 인해 인간과 세계가 이원화됨으로써 정신적으로는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근원과 긍극은 과연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마지막으로 저의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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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하시면 출처로 이동합니다.]

[출처] http://www.koreanartistproject.com/eng_artist.art?method=artistView&auth_reg_no=107&flag=vr&flag2=crit

 

인터랩 : 장시간에 걸쳐 삶의 철학과 솔직한 대화를 나눠준 송창애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도 파주의 조용한 작업실에서 힐링 여행을 하러 온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더 활발한 활동 그리고 소통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editor 김 주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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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애

 

학력

2013   Ph.D.  홍익대학교 (동양화)

2008   M.F.A. Univ. of Oregon 미국 (Painting & drawing)

1997   M.F.A. 숙명여자대학교 (한국화)

1995   B.F.A. 숙명여자대학교 (한국화) 

개인전

2016   WATERSCAPE_水류화개 (백운갤러리)

2015    Waterfull (갤러리선제)

2015    WATERSCAPE_물我一體 (아라아트센터)

2013    WATERSCAPE (영은미술관)

2013    MæSS_After Purification (공아트스페이스)

2012    MæSS_Purification (현대미술관_문헌관 전관, 홍익대학교) 

2011    MæSS_山.水.火.風 (미술공간 현)

2010    MæSS_LAND (인사아트센터)

2010    MESS_Haiti (문신미술관_빛 갤러리, 숙명여자대학교)  

2010    MASS_Nebula (Fairbanks Gallery, 오리건주립대학교, 미국) 

2009    MASS_Invented sky (Chambers@916 Gallery, 미국)

2008    MASS_Clod/Cloud (ADELL MaMILLAN Gallery, 미국)

2008    Eying/Iing Installation (Eric Washburn Gallery, 미국)

2005    City Scapes (White Lotus Gallery, 미국)

2002    Impression of the Metropolitan Seoul (White Lotus Gallery, 미국)

2001    MANIF_Seoul International Art Fair (예술의전당)

2001    Life_Confluence (Pegasus Gallery, 미국)

2000    Soul of Seoul (Fairbanks Gallery, 오리건주립대학교, 미국)

1998    Life_Wall (공평아트센터)  

1996    Life_Coexistence (서경갤러리)

[레지던시 및 아카데미 프로그램]

2014    ACIA 국립아시아문화정보원 아티스트 & 큐레이터 아카데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14    영은창작스튜디오 YAFP 레지던시 (영은미술관)

2013    영은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8기 (영은미술관)

2010    아르코 신진작가 & 큐레이터 아카데미 (아르코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9    The Anderson Ranch Artists-in-Residence Program (미국)

[지원금 및 수상경력]  

2016    KAP 코리안아티스트 프로젝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사립미술관협회)

2015    ETRO 미술대상_은상 (백운갤러리)

2014    소마드로잉센터 아카이브 9기 (소마미술관)

2011    서울문화재단 창작예술지원금 (서울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1    Pollock-Krasner Foundation Grant (미국)

2010    소마드로잉센터 아카이브 5기 (소마미술관)

2009    The Anderson Ranch Artists-in-Residence Program: full fellowships (미국)

2008    School of Architecture and Allied Arts Dean’s Graduate Fellowship in Art (Univ. of Oregon, 미국)

2007    Jury’s Choice: The 5th Around Oregon Annual (Corvallis Art Center, 미국)

2006    Phillip Halley Johnson Fellowships (Univ. of Oregon, 미국)

2006    Ralph Baker Memorial Awards in Painting (Univ. of Oregon, 미국)

2005    Honorable Mentions: Art on Paper Juried by Pamela Wilson, Executive Director of Maryland Federation of Art (Gallery International, 미국)

2003    The 3rd place: The 19th Annual National Juried Contemporary Fine Art

2003    Exhibition: New Directions 03 juried by Temero Mosaka, curator of Contemporary Art in Brooklyn Museum of Art (Barret Art Center, 미국)

1998    제 1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_한국화부분 (국립현대미술관)

1998    제 15회 동아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98    제 19회 중앙미술대전 (호암아트홀) 

1997    제 16회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97    제 7회 미술세계대상전 특선 (서울시립미술관)

1996    제 15회 대한미국 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1995    뉴프론티어전 우수상 (경인미술관)

1994    신미술대전 특선 (디자인센터)

1994    전국미술대학전 동상 (홍익대학교)

[작품 소장]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영은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ETRO, 상명미술관, 공아트스페이스, MBN

미국: Tacoma Art Museum, Asian Counseling and Referral Service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