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체험: 제임스 터렐 <Open Sky>

 관람객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비롯하여 여러 작품을 보러 <지중미술관>을 찾는다. 물론 안도 타다오가 설계를 맡은 이 건축물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의 건축물은 외부의 자연적 요소와 건축물이 서로 어울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 <지중미술관>도 그렇다. 통로에서 천정이 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우산을 폈다가 다시 접는 일을 겪었다. 기하학적 모양으로 마련된 중정(中庭)을 보면 가을 하늘에 바람이 산들거렸다.

 <지중미술관>에는 자연과의 교감을 보여주는 작업이 있는데, 바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Open Sky>이다. <Open Sky>에서 관람객은 전시공간 천정에 정사각형의 캔버스를 보게 된다. 미리 조사를 했을 때 그것은 하늘색을 띠었었지만, 필자가 갔을 때는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실 캔버스처럼 보이는 사각형은, 천정이 트여 하늘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었다. 터렐의 작업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모습을 건축적인 ‘화이트 큐브’ 공간에서 체험하게 해준다. 흰색으로 처리된 내부공간은 천정 부분이 정사각형 모양으로 트여있고 관람객은 열린 하늘을 맞이한다.

 터렐은 종종 대지미술가로 묶여 설명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작업을 보면 자연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다른 작가의 예를 들어보면, 마이클 하이저(Michael Heizer)의 <Double Negative>는 땅을 대규모로 직접 판 작업이고, 로버트 스밋슨(Robert Smithson)의 유명한 <나선형 방파제>도 소재는 자연의 것을 사용했는데, 이것들은 인간의 손이 개입된 자연의 모습이다.  이와 비교하면 터렐의 작업은 건축물처럼 세팅된 공간은 자연에 개입을 하더라도, 작품으로 보여지는 자연에 작가의 손이 개입되지 않는다. 우리가 <Open Sky>를 볼 때, 그것은 손 대이지 않는 하늘의 여러 모습이다. 물론 하늘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Open Sky>는 표면적으로 보면 모더니즘 회화와 닮아 있다. 지붕의 사각형 구조에 따라 파란색이 온갖 퍼져가는 모습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탐구한 ‘모더니즘 회화’와 외관상 유사하다. 그는 『아방가르드와 키치』(1939),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1940) 그리고 『모더니즘 회화』(1960)에서 미국 추상회화를 다루면서 시각중심적이고 절대적인 것을 찾았다. 그린버그의 논지와 비교하면, 터렐의 작업은 변화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는 시간성, 즉 고정된 것이 아닌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내리는 비나 밖과 안을 드나들고 부는 바람은 촉각적이며, 시각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터렐의 작업은 자연과 하나 되는 체험으로 감상자를 유도한다.

 회색이 펼쳐진 하늘의 모습을 보는 동안, 구름이 사방에서 흘러가는 것을 보았다. 회색 정사각형으로 나타난 하늘은 위와 아래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채, 색감이 서서히 변하거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전시공간으로 불어온다. 이것들은 시간의 경과에 따른 경험이다. 오늘 이 시간에 <Open Sky>는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고 있을까?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ellens_album/65330279/in/photostream/

<참고 자료>
클레멘트 그린버그, 김희영 역,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 『현대미술과 모더니즘론』, 시각과언어, 1995
클레멘트 그린버그, 김광명 역, 「모더니즘 회화」, 『현대미술비평30선』, 중앙M&B, 1987
전영백, 『코끼리의 방』, 두성북스, 2016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