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존재들 : 크리스찬 볼탕스키 <속삭임의 숲>

 소중한 사람의 정박지점. 그곳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로지 마음에만 있는 것일까? 일본 사람은 소중한 사람을 가까이에 하려고 한다. 이때 말하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존재가 생존하든 이미 세상을 떠나 있든 간에 상관없이. 집 안에 죽은 사람을 모시는 불단(佛壇)이 있고, 도시 한 가운데에도 묘지가 있고, 할머니한테 받은 부적을 가방에 매고나 그렇다. 소중한 사람은 소중한 사람 그 자체로 간직되기보다는 그 사람의 기억과 관련된 물건과 같이 간다. 선물 받거나 물려받은 것을 간직하면서 그 사람을 떠올린다.

 카가와 현 테시마, 이곳에 크리스찬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의 또 다른 작업을 새로 볼 수 있다. 테시마에 있는 그의 유명한 작업은 <심장소리 아카이브>이다. 볼탕스키는 사람의 심장소리를 기록하여 이곳에 보관하였다. 세계 여러 곳에서 모아진 심장소리는 어두운 방에서 울려 퍼진다. 여기서는 자신의 심장소리를 기록을 하며 보관 또한 가능하다.

 <심장소리 아카이브>가 있는 곳에서 떨어져, 올해 2016년에 새로운 작업이 전시되었다. <속삭임의 숲>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업은 테시마 산속에서 전시되었다. 어떤 존재가 속삭이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길을 올랐다. 문득 차가운 소리가 들렸다. 일본의 후링(風鈴풍령, 작은 종의 한 종류, 한국의 풍경, 풍탁과 유사:필자) 소리가 가을 날씨에 들려왔다. 몇 분 더 걷다 보니, 산 속에 수많은 작은 종이 가지에 매달려있었다. 그 종이 바람에 나부끼면 딸랑거리는 것이었다. 추 밑에 달린 탄자쿠(短冊, 종이 부분)를 보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고 거기에 이름이 쓰여져 있다. 볼탕스키는 이 작업에서 탄자쿠 부분에 소중한 사람의 이름을 쓰게 하였다.

 <심장소리 아카이브>에서 생존하는 사람이 자신의 심장 박동을 기록함으로써 그 사람의 직접적인 흔적이 느껴졌다. 한편, <속삭임의 숲>에서는 이름이 적힌 소중한 사람은 직접적으로 작품에 개입되지 않는다. 거기에 그 사람 이름을 쓴 자가 간직할 뿐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리워하는 대상은 멀리 카가와의 산 속에 들어가서 청각적으로 다가온다. 소중한 사람이 머무르는 <속삭임의 숲>은 마치 묘지에 이름이 새겨지는 일과도 같다.

 정박한 배가 다른 항구를 향해 엔진을 울린다. 그리워하는 사람이 곁을 떠날 수 있지만, 마음 속으로 또는 받은 선물이나 풍령 소리가 되어 맴돈다. 볼탕스키는 <속삭임의 숲> 작업에서 <심장소리 아카이브>에 이어 또 하나의 ‘순례지’가 되기를 원했다. 비록 거기가 어떤 프랑스에서 온 미술가에 의해 마련된 공간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가 이름이 적힌 풍령 소리를 듣고 계승되어가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예술작품은 어떤 위치를 가지는가? 볼탕스키의 말을 빌리면 ‘종교적 신화’와도 같다. 예술작품은 물질적으로 한계를 겪지만, 구전으로 계승되는 것은 하나의 신화처럼 대를 이어가면서 남는다. 앞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은 볼탕스키 자신이 아니라 거기를 찾는 여러 사람들이다.

<사진 출처> Casa Brutus [http://casabrutus.com/art/24695/5]

<참고자료>     
도쿄정원미술관 《아니미타스 – 떠들썩거리는 망령들》전(2016.9.22~12.25.) 작가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mbRB5TmWC5k]
<속삭임의 숲> 작가 토크쇼 (2016.7.29) [http://benesse-artsite.jp/story/20160729-625.html]
안희경,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 아트북스, 2014
ラフカディオ・ハーン / 池田雅之, 『日本の面影』, 角川ソフィア文庫, 2000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