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카디프와 조지 뷔레스 밀러 <Storm House>: 이야기되지 않는 역사

 수많은 예술제가 있는 가운데, 그 지역과의 관계는 자주 언급된다. 그 지역과 관계되는 역사에 조명하고 그것을 예술작품의 주제로 다루거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건축물을 전시장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다. 카가와에서 열린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카가와에서 느껴진 것은 작품과 지역의 근접성이다. 지하철역을 나와서 도보 10분 거리에 전시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배를 타야 하고 버스를 몇 번씩 기다려야 한다. 혹자는 부산비엔날레를 보러 서울에서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근접성은 지역과의 긴밀한 우대관계이다. 전시장이 따로 마련되거나 작품이 한차례에 미술관으로 몰리듯이 전시되는 것이 아니다. 골목길과 오르막길을 올랐다 내려갔다 하면서, 아까 마주친 해외관광객과 똑같이 헤매면서 전시장인 ‘집’에 겨우 도착한다. 관광객이 그곳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역설적으로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작품 전시장으로 삼은 곳은 이번 세토우치 국제예술제에서 여러 곳 찾을 수 있었다. 집이라는 전시공간은 경험적이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며 편안함을 준다. 작품의 주제 또한 소박한 내용을 다룬 것이 있었다. 테시마의 한 집에서 전시된 자넷 카디프(Janet Cardiff)와 조지 뷔레스 밀러(George Bures Miller)의 작업도 그렇다. 카디프와 밀러는 공동으로 예술작품을 제작하는데, 관객의 체험적인 요소에 주목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것을 만지거나 건드리는 ‘촉각’ 중심의 작업은 아니다. 2014년 광주에서 전시된 <40부의 모테트>나 리움에서 전시된 <Experiment in F# Minor>처럼 이번에도 그들은 소리와 음향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다.

 문턱을 넘으면서 “오자마시마스”라고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미술관의 전시실과 달리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사적인 만큼, 미술관에서 두 눈으로 전시작품을 지키는 감시체계를 맞이하는 것보다 들뜬 마음으로 들어갔다. 한편, 어두운 실내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걷잡을 수 없는 기대도 있었다. 신발을 벗고 다다미방에 올라와 앉았다. 전통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전깃불이 켜졌다가 꺼졌다 하면서 무언가 일어날 것 겉은 느낌을 준다. 옆방에는 기침을 하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반투명의 유리문에 드러워진다. 빗방물이 천장에서 양동이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창 밖을 보면 빗물이 점점 굵어지고 번개 치는 소리가 들린다. <Storm House>는 날씨 변화를 기술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창문에 내리는 빗물,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갑자기 켜지는 선풍기, 심지어 옆방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의 모습마저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표현된 것이다.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쳤다 하는 시간만큼, 관람객은 체험을 하는 한 10분 동안 날씨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 요사 부손의 하이쿠 만큼 어른이 된 관광객도 방안에서 소나기를 지켜보기만 했다. ‘소나기내려 풀잎잡는 참새들’.

 카디프와 밀러의 <Storm House>은 역사적인 사실을 규명하고자 한 것도 아니며, 카가와 이곳만의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 아니다. 그들이 표현한 것은 중요하다고 치부되지 않는, 어렸을 때 한번은 겪었을 법한 사소한 일상의 한 장면이다. 아마도 해외에서 오는 관광객은 이 작품을 보고 일본의 전통적인 민가와 현대 테크놀로지의 만남에 신기해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의 입장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 과거 속에 파묻혀버린 어린 시절, 번개 소리를 듣고 창가로 다가가 창문에 빗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면서 남기는 자국을 손으로 따라가던 장면이다. “이게 바로 역사다!”라고 거리로 나와서 당당하게 주장할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것을 떠올릴 수도 있다. 같이 방에 들어온 일본 미대생은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있고 중국 청년도 어쩌면 그가 가지는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거대서사를 우리 손으로 만들거나 묻혀진 역사를 발굴하는 것도 좋지만, 비 오는 소리, 젖은 몸에 재채기를 하듯이 개인의 추억이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이쿠 속 어떤 사소한 것처럼.

<사진 출처> Benesse Art Site Naoshima [http://benesse-artsite.jp/art/stormhouse.html]

editor Yuki K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