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 Heesoo Agnes Kim

 

작가노트

김희수의 작업은 삶과 자기인식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사회적 환경과 교육 안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대해 소통 하기 위해 자아의 형성, 주체의 구성이라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인간 본연의 자아는 자신이 속해있는 환경 그리고 과거 속 자신의 모습들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실현된다. 실존하는 것들과 진실을 향한 탐구 사이에서 본인 작업의 생명력은 단련된다. 사회적 목표라는 것은 여러 세대를 거쳐 이어지지만, 그것을 가장 먼저 표출하는 것은 한 개인이며,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정해진 이상의 힘과 덕목이라 여겨지는 것에 도전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삶의 본질은 탐구하는 행위로 귀결되고 본인의 작업 내부의 예술적 고민은 자신과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은 꿈의 개념과 관련해 작업으로 표현해 보려고 했으며 주체의 구성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영향 관계의 측면에서 다룬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자연, 환경, 사회적 기호를 비롯한 이미지 등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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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cheon (봉천,奉天), Photograph Time Lapse Digital Video Projection, 17 min 12 sec, 2015

http://www.heesookim.net/blank-cazy

 ‘하늘을 받든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의 봉천(奉天)동이 2015년 1월 23일 이후로 중앙동으로 바뀐다는 우편물을 받았다. 여기저기 공사현장의 멈추지 않는 소음과 높아지는 건물들은 더 높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듯 하다. 이곳에는 달동네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판자촌인 무당집들이 즐비한 동네와 이미 재개발이 진행된 높은 아파트가 공존한다.

봉천 (奉天) 2015 비디오 작업은 15초에 한 장씩 찍은 연속된 사진들을 12 프래임으로 담은 영상이다. 이는 현실의 180초의 시간을 1초의 영상으로 빨리감기 함으로써, 정중동(靜中動)을 극대화 시킨다. 영상은 일몰과 일출이 반복되는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으나 후반후의 영상은 시간이 역류(逆流)하며 처음과 같은 시점으로 돌아가 끝이 난다.

   I received mail stating that the district of Bongcheon-dong (奉天洞), named to mean “serving heaven and/or pay tribute to the sky ,” would be renamed Jung’ang-dong on January 23, 2015. The ceaseless noise from construction sites here and there and the increasingly higher buildings seem to be directed at an even higher sky. Neighborhoods dotted with shantytowns expressed by the stereotype of “moon neighborhoods” (hillside slums) and fortunetelling houses operated by mudang (Korean shamans) coexist with tall apartments whose redevelopment has already begun.

 

  << Bongcheon >> (봉천,奉天)  is a video work consisting of twelve frames of photographs taken at 15-minute intervals. This maximizes movement in stillness by fast forwarding 180 seconds of time in reality into 1-second-long images. While the video shows and reflects the temporal flow of the repetition of sunrise and sunset, time flows backward in the latter half so that the video ends with the same perspective as at the beg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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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ador, Performance digital video still, 2015

http://www.heesookim.net/matador

 

나는 깃발을 들고 봉천동 빌딩 산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어떤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는지 혹은 만신인지 묻기도 했고 어린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관심을 보였다. 깃발을 들고 언덕을 오르는 나를 불편해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며 어둠 속으로 내 모습도 서서히 묻혀 사라지는 것 같아, 무거웠던 마음과 깃발에서 오는 불편함도 따라 사라지는 듯 했다. 나는 흰색과 빨간색의 깃발을 들고 봉천동 하단부의 무당집들이 많은 판자촌에서 시작해 미로 같은 골목골목들 사이를 통과하여 높게 솟은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등반한다. 그리고 하늘에 닿아있는 듯한 높은 건물들 사이로 사라진다. 도시의 어둠이 드리우자, 낯설었던 빌딩 숲 속의 골목길들과 불편했던 사람들의 시선은 더 이상 나에게 위협적이지 않았다.

깃발 퍼포먼스를 하며 내가 사는 곳 주변이 현대시장을 기준으로 높은 새 아파트가 위치하고 깨끗하게 공사된 길이 깔린 윗동네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아랫동네로 나뉘어 있음을 알았다. 또 퍼포먼스 이후 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에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는 두 초등학교의 학군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다르고, 편견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1)이라는 책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짓밟고 계속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려 애쓴다. 그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며 무조건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애벌레들은 결국 떨어져 죽거나 서로를 해친다. 결국은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지금 바닥을 기어 다니는 자신의 불안 속에 갇혀, 애벌레들은 저 높은 곳만을 염원한다.

하늘을 받든다는 뜻의 봉천이라는 작업은 과연 이 사회의 우리들, 애벌레들은 과연 어떤 하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시작한 작업이다. 퍼포먼스에서 나는 봉천동 가장 아래에 위치한 점집들에 꽂혀있는 것들과 비슷한 깃발을 들고 모든 골목들을 거쳐 점점 높은 아파트 산으로 올라간다. 점집들 사이에선 도드라지지 않았던 깃발이 그곳을 벗어난 장소에서는 다른 시선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깃발을 든 나는 점집들 사이에서 이질감 없이 묻혀 있었지만 그곳을 벗어나 움직일 수록 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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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ulus, Trina. (1973). 꽃들에게 희망을. Pallets 출판사; 초판. 이야기 속에서, 애벌레 영웅들인 줄무늬와 노랑이는 살면서 먹고 자라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원한다. 그들은 너무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꼭대기에 닿고자 꿈틀거리는 몸체들의 “애벌레 탑”을 쌓기에 이른다. 마침내 환멸을 느끼며, 그들은 애벌레로써 자신들의 “더”를 찾는 방법으로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번데기가 되어 “…나비가 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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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r On Me.  Two channel digital video projection, 1hour. 2015

http://www.heesookim.net/hair-on-me-

       

남성성을 상징하는 실재(Real)의 수염을 여성의 얼굴로 옴겨오는 행위를 통한 현상(apearance, phanomena)을 보여 준다. 나는 한쪽은 제거하고 한쪽은 붙였을때 물리적인 행위를 통해 보여지는 현상(apearance, phanomena)은 실재(real)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차이(1)란 같은 속성을 공유하는 것 중에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distinguishable구별, 분간). 남자 여자도 인간이라는 교집합(공통성)이 있으며 그 인과관계가 어디서부터 원인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문화적 관습, 사회 환경적인 성적 역할로 인한 다름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신체적 다름으로 남성, 여성성이 형성되는 차이(2) 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Hair on me 영상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인 털을 가지고 있는 남성의 모습보다는 여성의 모습이 더 강해 보인다. 털 역시도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남성성이라는 기호가 아닌가 털이 남성성의 상징이라면 털 로부터 남성성이 나와야 하지 vice versa 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남성은 연약해 보이고 여성은 강해 보이는 대비가 있다. 하지만 털 로부터 오지 않는 다는 예기를 하는 것이다. 즉 문화에서 만들어진 거지 이거 자체가 남성성이 아니다.

이것은 남자 여자 차이에 대한 털을 무력화 시키는 행위이다. 여기서 나는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것이 타고 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만들어 졌음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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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중 p. 262 유사성과 차이-오로지 서로 유사한 것만이 차이를 지닐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명제이다. 하지만 두번째 명제는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차이들만이 서로 유사할 수 있다(8 p.665 모든 존재자는 저마다 차이나는 것 le different이고, 오로지 그런 자격에서만 서로 동등하거나 같다. 따라서 우리가 그린 원의 도식은 다시 한 번 추상화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똑같은 거리에서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원주를 잃어버려야 하고, 그 대신 요철이 심하고 유동적인 둘레를 얻어야 할 것이다.

2) Claude Levi-Strauss, Le totemisme aujourd’hui, P.U.F 111쪽. “서로 유사한 것은 유사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차이들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원칙이 적어도 두 계열의 구성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각 계열(가령 토테미즘에 대해서는 서로 구별되는 동물 종들의 계열, 그리고 변별적 차이를 띠는 사회적 신분들의 계열)의 항들은 서로에 대해 차이를 지니다. 즉 유사성은 “이런 차이들의 두 체계 사이에서”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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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Heesoo Agnes Kim

 

Web : www.heesookim.net

 

학력

2016 서울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석사졸업

2009 화이트클리프 아트 컬리지 순수미술 학사졸업

2003 로즈힐 고등학교 미술전공

 

주요 전시

2015

‘Settle-Light on the rooftop’, 봉천 월드힐, 봉천, 한국

2014

‘EXODUS 5th’, 3030 팔레 드 서울, 서울, 한국

2009

‘One The Full’, 피얼스 갤러리, 오클랜드, 뉴질랜드

‘Please Find Enclosed’, 피얼스 갤러리, 오클랜드, 뉴질랜드

‘Listen with Your Eyes’, 새틀라이트, 오클랜드, 뉴질랜드

‘View Master’, 랜돌프 스트릿트 갤러리, 오클랜드, 뉴질랜드

2008

‘Blend’, Randolph st Gallery, 오클랜드, 뉴질랜드

 

수상

2009 Studio Night Guard, Whitecliffe Student association, 오클랜드, 뉴질랜드

2008 Art Supplies New Zealand, Art Supplies NZ, 오클랜드, 뉴질랜드

2003 Rosehill College 2003 Scholarship, Rosehill College, 오클랜드, 뉴질랜드